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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라일리의 비극적이리만큼 평범한 일기

저자 / 역자
조애나 네이딘 지음 | 박슬라 옮김
분야
문학/에세이
시리즈
아일랜드
출간일
2010/11/08
ISBN
9788935665143
가격
12,000
보도자료
1372669012_2050.hwp
가정형편도, 성적도, 친구도, 심지어 이름까지!모든 것이 보통이라서 불만인 십대 소녀의 비행非行 일지!
런던 근교에 위치한 소도시에서 부모님,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열세 살 소녀 레이첼은 불만이 아주 많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고만고만한 친구들과 함께 놀며, 그야말로 ‘별 일 없이’ 지내고 있으면서,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일까?
우선 레이첼은 한창 유행하는 미드 ‘O.C’를 못 보게 하는 엄마가 불만이다. 엄마는 ‘O.C’뿐 아니라 다른 재밌는 드라마들과 얼룩이 생긴다는 이유로 블랙커런트 주스마저 금지했다. 다른 친구들이 다 갖고 있는 휴대전화도 전자파가 나온다며 안 사준다. 사무용 볼펜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며 TV 시리즈 ‘닥터 후’를 볼 때만 생기가 도는 아빠와, 괴짜 기질이 있지만 학교 성적이 뛰어나고 글쓰기도 곧잘 하는 남동생도 맘에 안 든다. 레이첼은 자기가 입양아가 아닌 것도, 평탄한 성장기도, 범상한 친척들도, 심지어는 자기 이름마저도 불만이다. 모든 것이 보통이라서, 책 속에 나오는 흥미진진한 모험 따위는 일어나지 않아서, 레이첼은 자기 삶 자체가 불만이다.
그래서 레이첼은 새해를 하루 앞두고 굳게 결심한다. 내 삶은 좀 더 비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내년은 달라야만 한다고, 다르게 살 거라고. 그 뒤부터 레이첼의 삶은 제대로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이 책에는 그 뒤로 벌어진 레이첼의 어설픈 일탈들이 일기 형식으로 생생하게 담겨 있다. 작가는 얼핏 복에 겨운 아이의 철없는 넋두리로 여겨지기 쉬운 그야말로 십대스러운 고민들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평범한 아이들에게는 평범함 그 자체가 재앙이고 비극이 될 수 있음을,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고민이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아이들에게는 깊은 공감과 지지를, 어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그 시절 자신이 품었던 고민들을 꺼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재치 있고 매력적인 소설이다.
평범함 속의 비범함,유머 넘치는 필치로 그려낸 개성 있는 인물들의 일상사
무척 평범해 보이는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사실 전혀 평범하지 않다. 반사회적인 것을 병적일 만큼 참지 못하고 수시로 신문사에 항의 기고글을 보내는 엄마, 때론 일곱 살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성숙한 언행을 보이는 남동생, 며느리보다 어린 연인과 늦둥이를 만든(?) 할아버지, 채식주의자용 가죽코트를 펄럭이며 돌아다니는 고트 족 단짝 친구, 유통기한이 벌써 지난 초콜릿을 손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는 극우 성향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다소 지나칠 만큼 엄격한 감리교 신자인 이모와 이모부, 알코올 중독에 걸린 천재가 되어 서른 살에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이 장래희망인 또 다른 친구……. 자세히 들여다보면 범상치 않은 인물들뿐이다.
작가는 특유의 유머와 위트 넘치는 필치로 이 개성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알고 보면’ 평탄하지 않은 그들의 일상을 그려낸다. 그래서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레이첼의 일 년간의 일기를 깔깔대며 읽다 보면, 모든 인간이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결국 평범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인기가 있건 없건, 풍족하건 풍족하지 않건 그 어디에도 평범한 삶이란 없고 모두들 예측이 불가능한, 그래서 흥미진진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은 이러한 인생의 다양함과 공평함을, 심심하고 지루한 삶이야말로 비극이라며 울부짖는 십대 소녀의 목소리를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십대 청소년의 투명한 눈에 비친,결코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들의 일그러진 초상
작가 조애나 네이딘은 영국 총리의 연설문 작성가로 활동했던, 흥미로운 전력의 소유자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속에는 날카로운 정치 풍자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방법으로 어떻게든 선거에서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는 어른들의 왜곡된 정치 인식은, 레이첼이 다니는 학교에서 열린 모의 선거에서 그대로 되풀이되어 나타난다. 아이들은 투표의 진정한 목적과 가치는 잊은 채, 유명인사의 지지와 선물공세로 투표에서 이길 생각만 한다.
어른들은 그 밖의 측면에서도 전혀 어른스럽지 못하고, 이런 모습은 레이첼의 투명한 시선에 고스란히 담긴다. 할아버지는 손자손녀가 버젓이 있는 집에 연인과 애정행각을 벌이고, 옆집 아줌마 아저씨는 로또에 당첨돼 얻은 상금으로 마당에 수영장을 짓고 술판을 벌인다. 무분별하고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제대로 컸을 리 없다. 사후 피임약을 구하기 위해 친구를 이용하는 아이, 교직원실 전화로 폰섹스 방에 전화를 거는 아이 등 레이첼의 일기 속에 등장하는 요즘 청소년들의 모습은 충격적일 만큼 범죄와 성에 노출돼 있다. 비단 영국의 경우에만 이럴까? 조금만 주의 깊게 주변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처럼 요즘 어른들의 일그러진 모습과 그런 어른들 속에서 동심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의 천태만상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지루하고 심심한 삶 대신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삶을 동경하는 레이첼의 일기는 때로는 눈물 나게 웃기지만, 한편으론 독자로 하여금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진정한 삶의 재미와 가치에 대해, 어른다운 어른이 부재하는 요즘 우리 사회에 대해 곰곰이 되돌아보게 하는 유익한 청소년 소설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