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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 민화집

저자 / 역자
브리오 출판사 편집부 지음 | 이세진 옮김 | 레나타 푸치코바 그림·사진
분야
문학/에세이
시리즈
아일랜드
출간일
2013/04/10
ISBN
9788935665273
가격
21,000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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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도 친숙한 유럽 민담의 원형
켈트족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뿐 아니라 독일 라인 강 일대부터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중부와 서부를 포함해 유럽 전역으로 뻗어 나갔던 민족이다. 이들은 라텐(La Tene) 문화라는 독특한 철기 문명을 이룩하는 데 머물지 않고, 로마 등 다른 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며 유럽 문화 전반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유럽연합이 출범할 초기, 유럽인들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정신적, 문화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정체성을 고대 켈트에서 찾고자 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음에도 불구하고 켈트족들은 자신들의 역사나 전해 오는 이야기에 대해 문자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켈트족들이 즐기던 이야기는 음유시인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켈트족의 전설들은 여러 이야기꾼의 입을 거치며 조금씩 다르게 변형되었다. 그 결과 큰 줄거리는 같아도 세부적인 내용이나 결말이 조금씩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이 태어났다.
특히 켈트족들의 세력이 강성했던 영국과 프랑스 일대의 민담은 그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한 영웅을 찾기 위해 잔치에 참석한 모든 남자들에게 노루 가죽 신발을 신겨 보는 장면(「리암 돈」)에서 독자들이 ‘신데렐라’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열세 마리의 식인 고양이가 등장하는 이야기(「열세 마리의 수고양이」)를 통해서는 서양의 문화에서 고대부터 ‘13’이라는 숫자를 불길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또 이야기 자체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가계도 상으로 아서 왕의 조상 이야기(「로마 왕비가 된 헬렌」)도 수록되어 있다.
켈트 민화를 읽는 재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의 옛날이야기들과 대단히 흡사한 내용과 구조의 이야기들이 먼 옛날 지구 반대편에서 전해지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님프들의 축복 아닌 축복으로 우스꽝스러운 당나귀 귀를 달게 된 왕자와 그 비밀을 지키지 못하고 구덩이를 파고 속삭이고 만 이발사의 이야기(「지혜로운 왕자」)는 국내 독자들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다. 또 많은 이야기에서 세 형제 또는 세 자매가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그중 막내가 유달리 고운 심성을 가지고 있고 유산 분배가 이루어질 때 가장 좋지 못한 것을 나눠 받거나 갈림길에서 가장 나쁜 길을 택하게 되지만,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에는 가장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결말은 「구렁덩덩 신선비」, 「바리데기」 같은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주인공이 언제나 세 번의 시련이나 시험을 거쳐야 하는 것 또한 도깨비와 삼세판 내기를 벌이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우리에게는 친숙한 구조다.
『켈트 민화집』에 수록된 열아홉 편의 이야기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프랑스 브르타뉴 등지에서 전승되던 켈트족 민화 중에서도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만을 엄선한 것이다. 한 편씩 천천히 읽다 보면 낯설고도 친숙한 이야기 속에서 시공을 초월해 고대 켈트족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인간과 초월적 존재들이 어우러진 환상 세계
켈트의 옛이야기들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다. 특히 <반지의 제왕> 등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부상해 온 판타지 장르의 경우 켈트족의 민화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고대 켈트족이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세계관이야말로 켈트 신화와 민담이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과 가장 차별되는 점이다.
켈트 민화의 첫 번째 특징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뿐 아니라 샘이나 바다 같은 무생물까지 모든 자연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어두컴컴한 밤, 겨울마다 덮쳐 오는 길고 혹독한 추위, 황량하고 척박한 환경과 끊임없이 맞서 싸우며 켈트인들은 자연의 거대한 힘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이는 고대인들로 하여금 자연을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자연물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자신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가 재앙과 복을 내린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켈트 민화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엘프들이나 코리강, 도깨비들은 바로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켈트 민화 속 마물(魔物)들은 이야기 속에서 완벽히 악하지도, 완전히 선하지도 않은 존재로 그려진다. 이들은 때로는 사람들을 심한 장난으로 괴롭히기도 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기도 하며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가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목초지를 선뜻 내주는 선량함(「고완 구렁」)과 자신들의 숲에 발을 들여놓은 인간에게 무서운 벌을 내리는 사악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엘프들(「엘프들의 여왕을 물리친 자넷」)의 모습에는 종잡을 수 없는 자연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켈트 민화의 이상향이 ‘어디에도 없는 나라’로 그려진다는 점 또한 무자비한 자연과의 끊임없는 대립으로 인한 고달픔에서 비롯된 것으로 켈트 민화만의 독특한 색채를 더한다.
두 번째 특징은 보통 사람과 초월적인 존재들 사이의 경계가 확고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얀(「방앗간 삼 형제」)이나 제이미(「제이미와 잠자는 미녀」), 자넷(「엘프들의 여왕을 물리친 자넷」)은 각각 방앗간 집 막내아들, 홀어머니 슬하의 가난한 목동, 천진난만하고 연약한 아가씨처럼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도깨비, 사악한 용, 그리고 엘프들을 다스리는 무서운 여왕과 대등하게 맞선다. 그리고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기보다 지혜와 용기, 강한 의지, 인내심처럼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능력을 통해 승리를 거둔다. 이러한 평범한 인간들의 승리는 켈트 민화에 차별화된 의미를 부여하며, ‘보통 사람’,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유럽의 정신을 담아낸 생생하고 강렬한 그림들
『켈트 민화집』의 또 다른 매력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펼쳐지는 신비로운 그림이다. 체코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레나타 푸치코바는 국제어린이도서협의회 IBBY에서 구약 성경을 다룬 그림으로 명예상을 수상한 작가다. 그녀가 삽화를 그린 책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대만 등 30여 개 나라에 소개되었고, 우리에게는 『중국 민화집』을 통해 섬세하고 화려한 필치로 중국 대륙의 옛 영화를 전한 바 있다. 『켈트 민화집』에서는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풍경을 화폭에 고스란히 옮긴, 선 굵은 그림을 선보인다.
석양으로 물든 너른 바다와 깎아지른 절벽에 우뚝 선 웅대한 성채는 보는 이를 압도하며, 넓은 들판에 활짝 핀 들꽃들은 저마다 싱그럽고 달큼한 향기를 내뿜는다. 어두컴컴한 숲 속에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칼날 부딪치는 쇳소리가 고막을 때리고, 모닥불에서 피어오른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찌른다. 착한 방앗간 집 막내에게 조언을 속삭이는 요정, 흉측한 머리를 흔들며 덤벼드는 사악한 용, 로마 왕의 마음을 첫눈에 사로잡은 금발의 헬렌, 장난스럽고 짓궂은 코리강들은 책을 읽는 독자가 떠올리는 바로 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열아홉 편의 이야기들을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살아 움직이는 주인공들이 튀어나와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 페이지 곳곳에 그려진 고대 켈트 문양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하며 독자들을 신비로운 고대 켈트 세계로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