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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추운 사람의 가슴에 한 줄기 따스한 햇살이” 신경림(시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제가 평소에 흠모해온 터로서 그분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이 상을 타게 된 것이 저로서는 몹시 기쁩니다. 이 상을 제정한 한길사와 심사위원 여러분에게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마디로 말해, 문학은 모름지기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을 바로 보고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길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를 제거하는 데 힘이 되고, 나아가 인류가 보다 높은 삶을 창조해가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단재 문학사상의 기본이라고 저는 알고 잇습니다. 물론 일제의 질곡이라는 조건 아래, 더욱이 낯선 외국을 방랑하는 망명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문학에는 한계가 있었겠습니다만, 저는 단재의 이 생각이 오늘의 문학을 이야기할 때도 크게 철 지난 생각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저도 제 나름으로 같은 생각으로 시를 써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과연 단재의 문학정신에 제가 얼마나 부합되는 시를 써왔는지, 두려운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단재의 문학정신을 수용하고 계승하는 것이 오늘의 우리 문학을 바르게 세우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저는 그것이 오늘의 문학에 도식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폭로하고 외치고 항의하는 일만으로는 지금도 높은 차원의 시가 되고 문학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단재 문학정신을 왜곡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무도 말을 못하는 시절에는 그것이 가진 도덕성만으로도 훌륭한 시로 평가될 수 있었겠지만, 누구나 다 말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옳은 소리, 뻔한 소리만 가지고는 독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가 독자에게 주는 즐거움을 전적으로 도외시하거나 예술성을 덮어놓고 폄하하는 것도 단재 문학정신을 올바로 수용하는 태도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재가 경계한 것은 정신의 해이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독자를 타락시키는 상업주의 문학이었지, 참다운 즐거움을 주는 고도의 예술성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곤혹스러워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만, 이 자리에 선 만큼, 시에 대해서 가진 제 생각도 몇 마디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먼저 저는 제 시가 바깥과의 싸움에만 머무르는 시로 시종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를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바깥의 온갖 환경과 싸우는 한편 나 자신과도 싸우는 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바깥에보다도 나 자신의 내부에 더 많이 도사리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바깥과의 싸움과 자신과의 싸움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어울려 있고 뒤섞여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제 시에 너무 큰 것을 기대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시를 가지고 무엇을 해결하고 또 세상을 바꾼다는 따위의 허풍도 떨지 않겠습니다. 제 시가 추운 사람의 가슴에 한 줄기 따스한 햇살이 되거나 목마른 사람에게 한 모금의 시원한 물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렵니다. 한편 저는 제 시가 남 앞에서 큰 소리로 남을 가르치고 이끌려는 오만한 시가 되어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본래 용기 없고 소심한 터라 한번도 그래본 일이 없고 그러려는 생각을 가져보지도 못했지만, 아무래도 시, 나아가 문학은 남을 가르치고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섞여 살며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남의 아픔을 쓰다듬고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려 애쓰는 가운데 남들에게 참다운 뜻의 즐거움도 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제가 가진 시에 대한 소박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시가 우리가 사는 데 힘이 되고 도움이 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니, 단재 문학정신에서 크게 빗나가지는 않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어느새 저도 나이 많이 들었지만 남은 세월 더 열심히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