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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오늘 저는 소중한 분들의 축하 속에서 단재상을 받게 되어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결정을 내려주신 단재상 위원회의 여러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70년대 후반에 학부시절을 보낸 저와 저의 동세대는 이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으며 비로소 이 세상에 대하여 진정한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를 통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체적인 세계 인식의 지평을 열어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마음속의 스승이셨던 이영희 선생님으로부터 오늘 이 단재상을 수상하는 것은 저에게 더없는 영광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선생님께 특별한 감사의 뜻을 밝히고 싶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는 학문의 깊이나 인격, 그리고 저의 청년시대 이후 이 나라가 걸어온 고통스러운 민주화의 역정에 대한 기여라는 기준에서 볼 때, 그 어떤 면에서도 단재상의 위상과 취지에 결코 어울리지 못하는 저에게 주어진 이 상의 수상소식에 접하면서 저 자신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상에 접하는 저의 마음은 기쁨 못지않게 당혹스러움도 컸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저에게 이 귀중한 자리를 허락하신 뜻은 그동안 저의 미미한 작업이나 노력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앞으로 제가 가꾸어나가야 할 학문과 더 치열한 노력을 재촉하시는 채찍으로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축사를 해주신 손호철 선생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거의 10년에 걸친 지난 세월 동안 손호철 선생님은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서 저의 기쁨과 아픔, 그 모든 것을 지켜보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따뜻한 선배로서 그리고 언제나 친구처럼 고락을 같이해주신 손호철 선생님을 저는 마음속으로부터 언제나 존경해왔습니다. 오늘 이 점을 새삼스레 말씀드리고 싶은 감상을 느낍니다. 그리고 오늘 쉽지 않은 걸음을 하셔서 이 자리에 참석하여 축하하여주신 선배님들, 동료 선생님들 그리고 또한 존경하는 후배들, 특히 한국정치연구회의 후배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 선생님들은 실제로 이러저러한 사연들로 맺어진 인연을 통해 여러 가지로 저에게 학은(學恩)을 베풀어주신 분들임을 새삼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번 단재상의 수상작품으로 지목하여주신 『20세기의 문명과 야만』을 편집하고 제작하여주신 도서출판 한길사와 편집부 여러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삶을 둘러싼 이 세계와 이 시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 세계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획득하는 것과 함께 이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눈을 갖는다는 것, 우리 자신의 혜안을 창조해나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과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산하, 같은 정치질서, 같은 역사문화적 경험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운명공동체의 단위라고 말할 수 있는 민족공동체라는 것은 그것 자체로서 어떤 절대적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실적 삶을 공동으로 규정하고 있는 인간적 네트워크의 총체라고 할 수 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민족공동체라는 것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존재양태와 대외관계양식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남아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민족공동체 내의 내적 열망을 전 인류적인 가치 지향과 부합시켜나가는 길에 대한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뒷받침하기 위한 세계인식, 그것을 우리는 진보적 민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것은 민족내적인 진정한 총합과 함께 세계의 다른 역사적 공동체들과의 바람직한 관계양식을 추구하는 이상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강대국가들의 권력과 자본이 일상적으로 그리고 세련된 방식으로 창조하고 전파하는 이데올로기들과 공존과 긴장의 관계를 언제나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족공동체의 내적 열망이 전 인류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진보적 방향으로 연결되도록 한다는 것은 결국 진정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의 기초라고 생각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은 우리에게 필요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이란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우리가 보다 광범한 보편성을 갖는 것으로 당연시하는 강대국들 내부의 중산층 중심의 국제주의적 이데올로기들과 경쟁과 갈등의 관계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세계인을 자처하며 행동하면서도 민족과 국가를 언제라도 기득권 유지와 억압의 수단으로 동원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나 집단들이 내세우는 코스모폴리타니즘으로부터 이 세계의 집시와 보헤미안들, 즉 이 세계체제의 물리적, 정신적 주변인들이 그리는 세계공동체로서의 진정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양식을 구분하고 분명히 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적 세계인식이란 결국 오늘과 앞으로의 세계에서 한정된 인류자원의 투자 우선순위를 평화와 복지의 공유가 아닌 파괴와 풍요 속의 빈곤과 낭비 중심으로 왜곡시키는 구조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이며, 그것이 결국 어느 것이 진정한 코스모폴리타니즘적 세계인식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와 세계에 대하여 우리 자신의 혜안의 한 측면으로서, 우리 자신의 국제정치학적 인식 지평을 가꾸고 창조하여나간다는 이상과 목표는 저에게도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언제나 마음속에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 연장 속에서 광주라는 문제에 녹아 있는 대외관계라든가, 한반도 핵문제라든가, 또는 20세기의 문명과 야만에 대한 저의 관심 속에 투영되어왔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제가 진행해온 미미한 작업 속에서 그러한 이상은 시작이며 걸음마로 남아 있을 뿐 언제나 먼 신기루처럼 느껴질 때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우리 시대의 학자들에게 이상(理想)이라는 것이 과연 남아 있는가를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그 이상이라는 것이 이 시대 이 세계 속에서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우리가 다시 한 번 불을 지펴야 할 이상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은 더욱 막연하기만 한 듯한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잇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치열한 학문적 자기 성찰이 요구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타고 남은 재 위에 다시 불씨를 지피는 심정으로 우리는 다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시대의 작풍이 그러한 만큼 그 일은 지난함이 더할 것이며 막연함도 더할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 방향타의 한 기준으로서 우리의 정치학, 우리의 국제정치학에 관련해서 세 가지의 미덕을 종합하는 것을 꿈꾸어봅니다. 그것을 다소 은유적으로 표현한다면, 첫째는 냉엄한 현실인식의 비장미이며, 둘째는 현실을 넘어서는 변화와 그 방향에 대한 치열한 사고를 담은 초월의 미학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우리 정치공동체의 내면과 여전히 인류의 80퍼센트 이상을 점하는 궁핍하고 여전히 억압받는 세계의 주변인 공동체들 사이의 보편적 고뇌를 연결시키며 그 고민을 우리의 학문에 담아내는 “낮은 곳으로부터의 세계적 보편성”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이 자리에 와주시고 또 저의 두서없는 생각들 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애정을 갖고 저의 작업들을 지켜보아 주시고 끊임없이 편달해주시기를 여러 선생님들께 빌어 마지않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