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한국에서 유행하던 지적 담론 중 하나로 페미니즘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학에서는 여성학이라는 이름으로 강좌가 생기기 시작했고, 전공자들이 하나둘 배출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지적 담론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분석틀이 가장 위세를 떨친 분야는, 영화ㆍ문학과 같은 허구적 생산물에 대한 ‘비평적 실천’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비평적 실천이 한국의 지적 담론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는 성과를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공간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 가정과 사회 속에서 여성 삶의 문제를 천착하는 연구 성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형편이다.
인류학은 인간의 실제적인 삶을 다룬다. 민족지학적(ethnographic) 연구란, 인류학자들이 오랜 시간 연구 대상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 책의 저자들도 민족지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 따라서 실제적으로도 실천적인 인류학의 연구 방법이 젠더 분석 방법과 조우한 이 책은, 한국의 인류학과 여성학 양쪽에서 모두 환영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