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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제6회 단재상 문학부문 수상소감
단재의 문학은 위기상황의 산물
“단재의 문학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민중을 각성시켰습니다.”
김남주(시인)
단재문학상을 받게 되어 우선 기쁩니다.
단재는 애국자였고 역사학자였고 언론인이었고 문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혁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혁명은 빼앗긴 조국을 되찾는 일이고 민중을 억압과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했는데 당연하게도 자기의 모든 문필활동을 이 혁명에 종속시켰습니다. 그의 문학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민중을 각성시키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단재와 닮은 데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방금 단재가 그의 문학을 혁명에 종속시켰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어떤 사람은 못마땅하게 생가할지도 모릅니다. 문학이 왜 문학 아닌 것에 종속돼야 하느냐고 말입니다. 물론 문학은 자기의 고유한 내용과 형식을 가진 독자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나 어떤 문학도 상황을 떠나서는 그 존재가 불가능합니다. 단재의 문학은 우리 민족과 그 구성원이 이민족의 지배하에서 질식사하는 절대절명 위기상황의 산물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기서 단재 문학의 예술적 성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럴 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민중을 각성시키는 데 봉사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걸출한 개인을 너무 치우치게 과장해서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영웅주의적인 역사관과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혁명의 승리는 특출한 개인에 의해서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특정한 계급의 선진적인 사람들에 의해서도 쟁취되는 것도 아닙니다. 폭력적인 성격을 가지건 평화적인 성격을 가지건 혁명은 민족 구성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중의 각성과 조직적인 저항에 의해서 그 승리가 보장됩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저의 시에 관해서 몇 마디 언급하고 수상 소감을 마칠까 합니다. 저 역시 혁명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몸과 마음을 혁명에 바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돌다보니까 그때부터는 시도 안 되고 혁명도 안 되었습니다. 시를 취할까 혁명을 취할까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저는 상당 기간 동안 망설였습니다. 그 무렵 저에게 시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런 갈등의 시기에 나는 우연히 어떤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혁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혁명적 시를 쓰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바로 아프리카 민중들과 더불어 혁명을 만들어야 한다. 민중들과 더불어 혁명을 할 때 비로소 노래와 시는 저절로 나올 것이다.
위의 내용은 아프리카의 한 민족해방전사(쎄끄 뚜레)가 흑인작가대회에서 행한 연설문의 한 구절입니다. 저는 이 인용문에 나오는 ‘저절로’란 단어에 매력이 갔습니다. 사회적인 실천이 먼저 있고 나중에 시가 있다는, 아니 저절로 나온다는 이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제가 세칭 ‘남민전’에 가담한 데는 이 말이 일정 정도 작용했습니다.
제 시의 대부분은 감옥에서 씌어졌습니다. 그것은 짧은 기간입니다만 제가 몸담고 있었던 조직에서 실천한 자연스런 산물에 다름아니었습니다.
『사상의 거처』 『이 좋은 세상에』도 감옥시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저의 시를 읽는 사람들은 다양하게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제 시가 생활의 구체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에 대해 한편으로 동의하면서도 불만이 있습니다. 그 불만을 여기서 토로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자리도 아닌 것 같고요.
단재문학상 심사위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끝으로 제 졸시 「이 좋은 세상에」의 뒷부분을 읽겠습니다.
어머니는 감옥에 저 세상에 남편과 자식을 빼앗기고
가슴에 멍이 들어 병원으로 가고
옷가지 챙겨 들고 아버지 보러 감옥에 가랴
밥반찬 보자기에 싸들고 어머니 보러 병원에 가랴
누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눈물 보일 겨를도 없다면서
꽃 한송이 사들고 내일은 동생 무덤 찾겠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