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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1]
우리가 처음 듣는 진짜 중국인 이야기
박일호 2012-08-28 5820
올해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지 2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도 부지기수로 많고 서점에는 여전히 중국 관련 책들이 넘쳐난다. 그런데도 우리는 정작 중국에 대해서 여전히 잘 모른다. 전시성 기념성 행사만 요란할 뿐 정작 중국을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나아진게 없다. 중국개방 이후 중국에 대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여전히 중국은 속내를 알 수 없는 나라라는 인상이 짙다. 일이 터지고 나면 매번 우왕좌왕하느라 정신없고 중국의 반응에 갑갑해하고 조바심내기 일쑤다. 중국 관련 책들도 원전이나 원자료에 가깝게 다가간 자료가 아니고 대개가 2・3차 자료에 의존하다보니 한계가 드러난다. 그런데 이번에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을 발견했다. 청조 멸망과 중화민국의 탄생에서부터 국공내전과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중국 근현대사에 등장했던 수많은 인물들의 흥미있고 드라마틱한 모습을 볼 수 있는『중국인 이야기1』다. 사실 처음 ‘중국이야기’를 만난건 책이 아니고 일요일마다 배달되는 ‘중앙SUNDAY’에서였다. 어찌나 흥미가 있던지 신문에 연재될때부터 꼬박꼬박 스크랩을 하면서 읽곤 했는데 마침 책으로 나왔다니 번거롭게 스크랩 할 필요도 없어지고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저자인 김명호 교수는 경상대학교와 건국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40년 가까이 중국을 마당 삼아 놀며 그들과 통해왔는데, 지금까지 어림잡아 1000번쯤 홍콩과 타이완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처음 중국에 빠진 계기는 1972년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의 방중 소식을 담은 호외였다. 그는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궈모뤄(郭抹若)의 소설 ‘낙엽’을 샀다. 그 뒤로 80년대에 한 사립대에 근무하면서 주말마다 중국, 홍콩, 대만으로 날아가 도서관에 들러 자료를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틈나는 대로 현지 골동품 가게들을 돌며 수천수만 장의 옛날 사진을 구입했다. 김 교수는 당시 홍콩 서점가에 유명 인사였다. “주말만 되면 웬 놈이 와서 책을 잔뜩 사서 그것도 값도 깎지 않고 사가더라 소문이 났지요. 선물까지 주니까 나중에는 알아서 값을 10분의 1로 깎아서 주더라고요.” 수많은 희귀 사진을 모았고 명사들의 기록을 파헤쳤다. 책에 등장하는 중국 근현대사 속 인물들의 라이브한 모습들이 바로 거기서 걸어나온 셈이다. 개중엔 중국인들도 잘 모르는 낯선 얘기도 있다고 하니 그저 입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중국은 기록의 나라다. 평범한 사람들도 매일 일기를 쓰고 기록을 남긴다. 살던 집을 부서뜨리면 어김없이 뭔가 기록물이 나온다. 『중국인 이야기』가 ‘진짜 중국인 이야기’가 된 남다름은 바로 이런 방대한 1차 기록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책 말미에 달려있는 7쪽의 참고문헌 역시 하나같이 중국 원서들이다.

인물열전 형식으로 구성된 책은 마치 2천여년 전 사마천이 쓴 『사기』를 연상케 한다. 생생한 증언과 기록을 바탕으로 여러 인물들의 깊은 내면까지 속속들이 파고든다. 수많은 인물들이 서로 엮이며 만들어내는 장대한 파노라마가 실로 무궁무진 놀랍기 그지없다. 마오쩌둥과 류샤오치의 미묘한 권력싸움, 천하명장 린뱌오, 문화대혁명을 뒤에서 음모한 캉성, 마르크스주의와 중국 현대철학의 발전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장선푸, 영원한 자유주의자 레이전, 오척 단구였지만 중국 근대사의 거인이었던 위안스카이 등 격동의 중국 근현대사 속에서 명멸한 수많은 혁명가, 지식인, 예술가들의 살아있는 얘기들이 숨가쁘게 펼쳐진다. 책은 크게 7개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마오쩌둥과 2인자 류샤오치의 관계를 통해 문화대혁명 과정의 내막을 속속들이 알려준다. 2부는 장제스를 중심으로 반목했던 아들 장징궈와 최고권력자 장제스의 쟁우(爭友) 후스, 전쟁을 하면서도 학문과 자유를 키운 시난연합대학의 일화들, 차이허썬, 자오스옌, 저우언라이 등 프랑스 파리 유학생들의 공산당 창당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3부는 장제스의 ‘북벌부인’ 천제루, 마오쩌둥의 ‘장정부인’ 허쯔전, 식민지 대만이 배출한 미모의 혁명가 셰쉐홍, 탁월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궁펑 등 여성 혁명가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4부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중국 현대미술의 초석을 쌓은 쉬베이홍, 만화가 출신으로 현대 중국화의 대가로 우뚝 선 예첸위를 비롯해 치궁, 둥서우핑, 옌원량, 류전샤 등 이름이 헷갈릴 정도로 다양한 걸출한 예술가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중국관련 역사지식이 얼마나 짧고 편협한 것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해준다. 위안스카이(袁世凱)가 대표적인 사례다. (493〜516쪽) 위안스카이를 이제까지 보수적이고 부패한 군벌쯤으로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무척 복잡한 인물이었다. 몸은 비록 오척 단구였지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정치무대를 종횡무진한 개명한 정치가였다. 공화제를 최초로 실현했고 비록 만장일치였지만 중국 역사상 최초로 투표에 의해 총통에 당선된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어딜가나 항상 주역이었고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대형 사건마다 그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판도가 변했다. 우리가 그토록 숭앙하는 쑨원(孫文)조차도 그에게 훨씬 못 미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장제스(蔣介石)에게도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장제스는 시종일관 중국공산당을 적대시했지만 '하나의 중국'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만은 마오쩌둥과 생각이 같아 중국의 분열과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공산당보다 더 무자비하게 다뤘다. 이 점에 있어서는 마오쩌둥도 장제스를 높이 평가했는데, 훗날 문화대혁명 때도 장제스의 고향에는 홍위병들이 못 들어가도록 보호했다고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개국대전 의식 때 톈안먼 광장을 공습하려다가 결국 폭격명령을 취소한 그의 일화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밖에도 목수 출신인 치바이스와 중학교만 졸업한 예첸위를 베이핑예술학원 교수로 발탁한 예술교육자 쉬베이홍의 일화(295〜343쪽)나 위안스카이가 황제자리에 눈이 멀어 역사의 순리를 거스리려고 할 때 목숨걸고 이를 막아 공화정을 부활시킨 혁명가 장징장의 이야기(481〜504쪽) 등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우리나라 현대사의 가까운 어느 지점을 상기시키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흥미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구어체와 단문으로 구성돼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중국인 이야기』는 매년 2, 3권씩 모두 10권으로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내 평소 습관대로라면 전권이 다 나와야 읽기를 시작할텐데 이 책은 1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서점으로 달려갔다. 책에 푹 빠져서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그냥 지나친적이 여러번이었고, 참여하는 독서모임에서도 다음 읽을 책으로 ‘강추’했다. 읽는 내내 중요한 대목이 나올때마다 밑줄을 긋고 ‘카톡’에 올리면서 여기저기에 ‘멋진책’의 출현을 알리기에 바빴다.

이 책을 읽다가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때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떠돌던 말이 생각났다. “1949년,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다. 1979년,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다. 1989년,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다. 2009년,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말은 미국인의 탐욕에서 비롯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위기를 중국만이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지만,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니 자본주의 국가니 하고 떠드는것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은 뭐든지 소유권을 놓고 이야기하고 사유 재산 제도가 제일 먼저 발달한 곳이다. 기본적으로 중국 사람들한테는 사회주의가 안 맞는 옷이다. 오죽하면 '처제 엉덩이 반쪽은 형부 것'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어쨌든 중국은 우리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중국이 너무 잘돼도 걱정이고, 문제가 생겨도 우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10년 동안 100번 넘게 중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2050년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진단하며 한국에 이렇게 충고한 적이 있다. “중국을 공부해라. 중국인의 시각으로 중국을 봐라. 깊이 알면 알 수록 중국은 거대한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만약 존 나이스비트가 이 책을 읽는다면 이렇게 덧붙일지 모른다. “그래, 바로 이런 책을 읽어야 진짜 중국의 모습을 알게 된다” -끝-(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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