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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랑이 (한길사의 단행본들)
자유주의자 조영남이 말하는 사랑, 사랑론!!
조영남 지음
2007-09-30 | 한길사 刊
신국판 | 반양장 | 458 쪽 | 15,000 원
978-89-356-5834-3 | 03810
 
‘조영남은 바람둥이다, 두 번이나 결혼하고 다시 이혼했다, 여자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더라’ 조영남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데이터는 이런 것들이다. 평소 경계와 영역을 넘나드는 자...
 
 
‘조영남은 바람둥이다, 두 번이나 결혼하고 다시 이혼했다, 여자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더라’ 조영남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데이터는 이런 것들이다. 평소 경계와 영역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발상과 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아온 조영남은 자신의 삶을 가리켜 사랑의 투쟁사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많은 사랑을 해왔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두가 더 많이 사랑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에게 바람둥이, 사랑전문가라는 꼬리표는 부정해야 할 누명이 아니라 긍정할 수 있는 영예이다.
그런 조영남이 자신의 전문분야라 할 수 있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자유주의자’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 조영남, 그가 사랑얘기를 한다면 어떤 사랑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어느 날 사랑이』에서 조영남은 평생에 걸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다. 그가 풀어내는 사랑론은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떤 사랑 이론이나 정신분석학자들의 조언보다 그 핵심을 찌르고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1. 조영남의 달콤쌉싸름한 사랑이야기

조영남의 사랑얘기라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그가 지금까지 해온 사랑의 경험담일 것이다. 『어느 날 사랑이』에는 지금까지 그가 겪어온 사랑의 풍경이 차례차례로 펼쳐진다.

(1) 푸르른 첫사랑, 더 파란 풋사랑

이 책이 어떻게 출발되었는가에 대한 조영남식 익살맞은(?!) 프롤로그가 끝나면 곧바로 푸른 청년시절 그가 경험한 아련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가난한 음대생 시절 그의 노래에 한눈에 반한 어여쁜 여학생과 나누는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와 젊은 시절 뜻밖의 인기를 얻은 청년 조영남이 흘려보내버린 두 번째 첫사랑의 모습이 아련한 7, 80년대의 풍경과 어우러져 그려지고 있다.
첫사랑 이전에는 풋사랑도 있었다. 친구들보다 성숙해지는 것이 늦었던 중학 시절,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했던 제1의 풋사랑은 사진 한 장으로 남았다. 함께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갔다가 왜 교복을 입고 야밤에 돌아다니냐며 선생님에게 이름표를 빼앗겼던 제2의 풋사랑이 지나간다. 대학생 오빠에게 범신론을 가르쳤던 세 번째 풋사랑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는 시인 강은교이다.

(2)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 풀 스토리

조영남의 사랑이야기라고 했을 때 조영남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올렸을, 거듭된 결혼과 이혼의 풀 스토리 역시 빠지지 않는다. 젊은 시절 동생처럼 연인처럼 만났던 첫 번째 부인과의 만남에서부터 스스로 축가를 불렀던 감동적인 결혼식 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미국 유학 시절과 이혼, 그리고 두 번째 결혼과 다시 이혼까지, 그의 삶의 한 축이었던 그 시기를 조영남식의 독특한 말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2. 조영남이 풀어내는 사랑학 개론

『어느 날 사랑이』는 그가 자신의 사랑편력을 자랑하기 위해, 혹은 변명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진솔하게 털어놓는 과거의 사랑이야기에 더하여, 그는 이성과의 사랑은 물론이요, 친구들, 가족들, 주변의 지인들, 그리고 나아가 신의 사랑에까지, ‘사랑’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 자신이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은 모든 것들에 대해 되짚어본다.

(1) 사랑은 마법의 보자기

"사랑은 마법의 보자기와 같다. 마법의 보자기가 하늘 위를 빙빙 돌다가 나와 누군가의 머리 위를 덮치면 그게 사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마법의 보자기는 어디쯤에서 날아다니고 있는지, 언제쯤 우리 동네 하늘을 지나갈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많은 사랑을 해온 조영남이 말하는 사랑이란, 지극히 우발적이고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그는 사랑이란 ‘마법의 보자기’와 같아서, 어느 날 갑자기 내 머리 위로 내려와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은 열심히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마구 뿌려도 호락호락 뜻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은 사랑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이 너무 많아져 버렸다. 외모, 재산, 언변, 가문……, 조건을 따지다 결국 사랑 한 번 못 해본 사람들은 결국 선수가 되어 맞선이라는 링에 오른다. 그가 보기에 백 번 넘게 맞선을 본 선보기의 프로들이 펼치는 탐색전은 ‘개그콘서트’에 버금가는 코미디이고, 능력 없고 돈 없으면 사랑 한 번 해볼 수 없다는 생각이 커지는 것은 국가적 문제이다. 교통사고처럼 언제 어디서 누구와 부딪칠지 모르는 사랑. 그가 말하는 사랑론은 사랑 이전에 상대의 조건과 재산을 먼저 따지는 이 시대의 사랑에 경종을 울린다.

(2) 사람과 사람 사이 어디에나 있는 사랑

"내 딸은 나의 스승이며 은인이다. 나는 내 딸이 아니었으면 내게 있어서 사랑이라는 게 진짜 존재하는 건지를 확인 못하고 엄벙덤벙 짧은 생애를 마감할 뻔했다. 그걸 내 딸의 존재 때문에 사랑의 있고 없음과 사랑의 형태까지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영남이 말하는 사랑은 단순히 이성애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가 만났던, 경험했던, 느꼈던 다종다양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고 새로운 사랑 방식을 제안한다.
그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랑에 빠진다. 40년 가까이 사귀어온 이장희ㆍ김민기ㆍ마종기ㆍ송창식과 같은 친구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를 감동시키고 눈물 나게 한다. 소설가 이윤기와 밤새 쫓아오는 새벽을 저주하며 쓸모 있는 말만 나누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묻는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면 뭐냐?” 남자끼리의 사랑에 겨우 우정이나 의리라는 말을 붙여주는 현실에 맞서 그는 당당히 사랑을 선언한다.
또 사랑의 대상에 가족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표현대로 ‘운동장’만 한 집에 일 봐주는 할머니를 빼고 나면 달랑 딸과 단둘이 사는 그는 자신의 딸이야말로 사랑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특별한 애정의 표현 없이도 그저 같이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해주는 딸의 존재를 통해 그는 비로소 사랑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아들의 여자친구를 소개받던 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서 뻗어버릴 만큼 만취했다는 이야기는 그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뭉클한 부정을 발견하게 해준다.
일명 ‘와우 아파트 사건’으로 불리는 조영남의 군입대 스토리에 얽힌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변호사였던 이태영 여사와의 남다른 인연은 사람과 사람의 인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서강대학교 장영희 교수와의 인연과 그를 둘러싼 일명 ‘청담학교’ 지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조영남의 모습은 그가 말하는 사랑이란 결국 넓은 의미의 ‘인간애’라는 것을 설명 없이 보여주고 있다.

(3) 신의 사랑 앞에서 겸손하라

"진리가 사랑이라고 말한 예수는 서른두셋일 때 그 말을 하고 죽었다. 내가 찾던 진리는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 나보다 낮은 사람의 발을 씻겨줄 수 있는 마음, 이웃을 진짜로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진리였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그의 사랑론은 예수의 사랑에서 비로소 끝을 맺는다. 한때 신학도였던 그는 젊은 시절부터 치열하게 진리와 자유와 사랑에 대해 고민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예수의 말은 곧 가족, 친한 친구들을 제외한 남들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진리를 얻을 수 있고,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이 곧 진리이며, 진리가 곧 사랑인 것이고, 나아가 진리를 통해 깨달은 사랑만이 인간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런 사랑은 인간으로서는 실현하기 힘든 너무 고차원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영남이 얻은 결론은 겸손하라는 것이다. 예수의 사랑 앞에서 겸손할 때 그 안에 자유가 있었다. 예수처럼 모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서 얻어낸 온전한 자유는 아니지만, 간신히 얻어낸 한 쪽박의 자유도 자신이 누리고 살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한 것이었다. 자유주의자 조영남의 출발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3. 어떤 사랑을 원하세요?


(1) 조영남이 부러워한 사랑

"내 아버지는 사랑을 딱 한 번으로 마감했고 아들은 사랑하다 말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지금쯤 하늘에서 경쟁심을 가지고 번잡한 아들 스타일의 사랑을 부러워하고 있는지 그건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단 한 번뿐이었던 내 아버지의 기막힌 사랑을 나는 늘 부러워했다는 사실이다."

풋사랑, 첫사랑, 결혼, 이혼, 딸을 향한 사랑, 예수의 사랑……, 조영남은 『어느 날 사랑이』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사랑을 원하는가. 어떤 사랑을 하려고 했는가.
조영남이 최고로 치는 사랑은 바로 평생 서로만을 보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다. 중풍으로 쓰러져 13년간이나 반신불수로 지낸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고생만 시킨 원망스러운 남편이었다. 두 분은 평생 살가운 말 한마디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갈 때마다 어머니는 남편을 무덤을 몇 시간씩 쓰다듬으며 일어설 줄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조영남은 단 한 번뿐이었던 아버지의 기막힌 사랑을 늘 부러워했다고 말한다. 평생 남부럽지 않게 사랑을 해온 그가 부러워한 것은 바로 아버지의 단 한 번뿐인 사랑이었다.

(2) 조영남이 꿈꾸는 사랑

"희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우리네 사랑평가단도 언젠가 쬐끔 선진화가 되면 꼭 부부 사이가 아니라도, 꼭 장래 같은 걸 약속한 사이가 아니라도 서로 좋아하고 서로 사랑하면 반드시 높은 점수를 주게 될 날이 온다는 걸 나는 믿는다."

이미 결혼과 이혼을 거듭한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사랑을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영남은 지금도 사랑을 꿈꾼다. 그것은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와 같은 사랑, 「그녀에게」와 같은 사랑, 「글루미 선데이」와 같은 사랑이다. 사랑하던 사람이 죽으면 따라 죽을 수 있는 사랑이고 사랑하던 여자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면 손수 돌볼 수 있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여자한테 내가 아닌 다른 남자가 생겼을 때 그 남자까지 사랑하고 그래서 한꺼번에 두 남자가 사이좋게 한 여자를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기까지 하다. 조영남이 원하는 사랑이란 곧 상대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락할 줄 아는 사랑,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사랑이다.
조영남은 사랑평가 조사단이 있어서 누구나 죽기 전에 한 번쯤 자신의 사랑점수를 평가받는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상상한다. 대한민국에 사랑평가 조사단은 없지만 바람직한 사랑이라고 여겨지는 일반적인 통념에 의하면, 수많은 사랑을 반복한 조영남의 사랑은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의 지고지순한 사랑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좋아하고 아끼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인정하고 점수를 부여한다면 조영남의 사랑점수는 100점 만점에 가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