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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한길사의 단행본들)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외 1명 지음
2005-03-10 | 한길사 刊
46판 | 양장 | 748 쪽 | 22,000 원
89-356-5554-6 | 03800
 
이 책은 대화 형식으로 서술한 짧지 않은 나의 인생의 회고록 또는 자서전이다. 회고록의 통상적 형식인 본인의 일인칭 서술이 아니라 ‘대화’ 형식인 까닭은, 개인사적 사실 내용과 삶의 방식에 대한 의미와 가...
 
 
이 책은 대화 형식으로 서술한 짧지 않은 나의 인생의 회고록 또는 자서전이다. 회고록의 통상적 형식인 본인의 일인칭 서술이 아니라 ‘대화’ 형식인 까닭은, 개인사적 사실 내용과 삶의 방식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질문자와의 비판적 토론 방법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 얽혀서 진행된 국내상황과 시대정신, 20세기의 인류사적 격동의 의미와 가치를 나의 세계관의 모색과 더불어 음미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사상사’적 담론이 전체 내용의 절반을 이룬다. 책이름을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으로 한 연유이다.
전체 내용의 앞부분은 개인사적 성격에서만 보자면, 일제 식민지하의 소년시대에서부터 이승만정권 말기까지를 다룬 기왕의 『역정(歷程): 나의 청년 시대. 리영희 자전적 에세이』(창작과비평사, 1988)와 시간적으로 중복된다. 하지만 단순한 연대기적(年代記的) 내용은 대폭으로 축소·생략되었다. 그 시기는 이를테면 지성인(知性人)으로 성장하는 한 개인의 ‘전사’(前史) 단계이다. 일제 식민지 하에 놓인 조선과 조선인의 생존환경의 체험적 서술이다.
단순 기능적 전문가로서의 ‘지식인’이 아니라 시대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으로 일체화시키는 불란서어의 뉘앙스(함의)로서의 intellectuel(-le), 즉 ‘지성인’에 해당하는 나의 삶의 시간적 구간은 약 50년간이다. 625전쟁의 지겹도록 혐오스러운 7년간의 군복무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하나의 자유정신의 인격체로서 1950년대 중엽부터 언론인과 대학교수, 사회비평가와 국제문제 전문가로서 활동한 현재까지를 말한다. 이 긴 시간에 걸친 나의 삶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自由)와 ‘책임’(責任)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棄權)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背信)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이런 신조로서의 삶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그렇듯이 바로 그것이 ‘형벌’(刑罰)이었다. 이성(理性)이나 지성(知性)은커녕 ‘상식’조차 범죄로 규정됐던 ‘대한민국’에서랴.
20대에 이르도록 나는 주로 개인의 성향과 성장환경 때문에 사회적 및 역사적 문제의식·지식이 백지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런 비주체적 존재(정신)가 성인이 되면서 사회의 모순에 부딪치고, 그때마다 실존적 선택을 강요당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서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의 논리를 획득해 나갔다. 그 삶은 사회와의 끊임없는 긴장관계일 뿐 아니라 자신과의 부단한 내면적 투쟁이었다. 크고 작은 실수와 시행착오가 그 길에 뿌려져 있다.
내가 살아온 75년이라는 세월은 최근 몇 해를 제외하면 한마디로 ‘야만의 시대’였다. 일제 식민지시대와 소위 ‘해방’ 후 50여 년의 반인간적 생존환경이었다. 이 엄혹했던 시대에 나는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책임으로서, 그리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서 싸우는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들을 돕기 위해서, 많은 글을 썼고 많은 발언을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서 나에게 가해지는 고뇌와 불이익은 말할 수 없이 혹독했다. 그 긴 기간에, 한쪽으로부터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실현을 위해서 싸운 착하지만 힘 없는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럴수록 다른 한쪽으로부터는 지배의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잔인한 자들이 이를 가는 증오와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이 기록은 사랑과 미움의 두 극단적 시대상황 속에서 살아야 했던 한 지식인의 고뇌하는 모습이다.
한 시기, 나의 이름은 많은 청년·학생·지식인들에 의해서 과분하게도 ‘사상의 은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럴수록 야만의 권력은 나에게 ‘의식화의 원흉’이라는 이름의 굴레를 씌워 핍박의 고삐를 조였다. 이 시기, 거짓(허위)으로 덮인 깜깜한 한국의 하늘에 희미하나마 한 줄기 진실과 이성의 빛을 비춰주려는 나의 글과 사상이 ‘야만의 지배’를 물리치려는 선량한 인간들의 눈물겨운 싸움에 힘이 되었는지, 또 이 시대 한국사의 전진에 얼마만큼의 기여를 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쨌든 1990년대에 이르러 나라에 광명이 비치게 되었을 때, 나는 허약한 한 지식인으로서 미미하나마 나의 사회적 책임과 시대적 소임을 다한 것으로 자위했다. 그리고 피곤하기도 했다. 그래서 인간다운 사회를 위한 또 하나의 싸움의 환호성을 들으면서 시대적 변혁운동의 전면에서 물러섰다. 때마침 정년퇴직으로 대학의 교직에서도 물러났다.
이렇게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반납하고 노후인생을 조금은 안락하게 개인적 성찰로 살아가려는 나에게, 살아온 궤적과 사상의 편력을 적어내라는 많은 사람들의 요청이 그치지 않았다. 나의 삶과 사상이 자신의 인생의 내용과 지향을 바꿀 만큼 영향을 주었다고 고백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고, 또 많은 출판사들이 그랬다. 이것은 새로운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의 시대적 역할은 이미 끝났고, 이로 말미암아서 성장한 수많은 유능한 후학·후배들이 사회 온갖 분야에서 눈부시게 지도자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소리 없는 존재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던 2000년 말, 나는 느닷없이 찾아온 뇌출혈이라는 손님을 맞고 쓰러졌다. 70세를 넘기려는 순간이었다. 뇌중추신경 타격(중풍)으로 신체의 우(右)반신이 마비되고, 사고도 혼미해지고 언어의 장애를 겪었다. 이제는 내 의지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지적(知的) 활동과 글 쓰는 일은 영원히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운명의 선고로 알고 체념하면서 순순히 승복했다. 그런데 운명의 신의 예정표를 어찌 인간이 가늠할 수 있겠는가! 4년이 지나는 사이에 신체와 정신의 마비가 서서히 그러나 착실하게 회복되어 갔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것이 있는데 오른손의 떨림과 손가락의 마비다. 글이라면 엽서 한 장의 짧은 글을 힘겹게 쓰는 것이 고작이지만 구술(口述)로 하는 저술은 웬만큼 가능해졌다. 지적 활동을 단념하고 영원히 포기한 상태에서, 짐짓 운명의 신이 감추었던 뜻을 알 것 같았다. 하찮고 보잘것없는 삶과 사상이었으나마 여전히 잊지 않고 사랑과 경애의 마음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고마운 이들의 요청에 마지막으로 보답하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바로 나의 이런 운명적 계기를 포착한 김언호 한길사 사장이 성의와 열정을 다해 끈질기게 설득했다. 대화형식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굴복했다. 아직 뇌의 사고능력이나 기억력은 완전에는 먼 상태였다. 그래서 사고와 기억을 도와줄 대담자가 필요했다. 이 일을 임헌영 씨가 기꺼이 맡아주었다. 온전치 못한 나의 기억력을 70년 삶의 줄거리의 국면 국면마다에서 상기시켜주고, 주요한 역사적 및 동시대적 문제들에 관해서는 물론, 국제적 사건과 상황에 관해서도 역사의식에 투철한, 예리하고 이성적인 비판적 담론을 가능케 해준, 친애하는 후배이자 다정한 벗 임헌영 씨에게 감사한다. 뛰어난 문학비평가이자 해방후사의 냉철한 정치적·사상적 분석가인 임헌영 씨의 질문자 겸 대담자로서의 역할이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전체 담론의 격을 높여주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 모든 도움에 깊이 감사한다.
내가 나의 뜻대로 손수 내용을 다듬고 문장을 쓰지 못하는 까닭에, 많은 사람의 참여와 여러 가지 기능에 관한 복잡한 작업상 협조가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몇 번씩이나 거듭된 구술의 기록과정에서 수고한 정석우 학생과 장한승 학생의 노고에 감사한다. 원고를 구술하고 다듬고 고치고, 다시 구술하고 그 전체를 새로 다듬어서 기록·정리하는 지루한 작업에 2년 가까이 걸렸다. 이것은 일을 시작하던 시점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었다. 오로지 자기 글을 자기가 쓰지 못하는 까닭에 불가피하게 필요한 저술 작업의 복잡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성원과 도움으로 이제 미흡하나마 나의 일생을 글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원고 작성상의 마무리 작업을 능률적으로 끝내준 한길사 편집부의 박정현 씨, 제작의 전반적인 감독을 맡았던 강옥순 주간의 노고를 잊지 않을 것이다.
기록됐어야 할 내용인데 누락됐거나 생략된 것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의 지금 조건과 형편을 생각하면 이것으로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솔직한 심정이다.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청이 있다. 이제는 거의 지나가버린 그 시대를 인간적 고통과 분노, 상처투성이의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온 기성세대나, 앞 세대들이 심고 가꾼 열매를 권리처럼 여기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맛보고 있는 지금의 행복한 세대의 독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고민하고 자신이 그 상황에 직면했거나 처했다면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가치판단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 보기를. 그럼으로써 이 자서전의 당사자와 대담자가 책 속에서 진행한 것과 같은 자기비판적 대화의 기회로 삼기를.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나와의 비판적 대화도 가질 수 있기를.

2005년 2월
군포시 산본 수리산 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