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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人,자유인 (리영희저작집)
리영희 지음
2006-08-30 | 한길사 刊
신국판 | 양장 | 396 쪽 | 22,000 원
89-356-5695-x | 04300
 
변변치 못한 이 책을 읽게 되는 독자를 위해서 먼저 책의 내용과 성격에 관해서 몇 마디 설명드리는 것이 저자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수록된 글은 몇 개를 제외하면 모두, 또 하나의 반(反)문명적 군부독...
 
 
변변치 못한 이 책을 읽게 되는 독자를 위해서 먼저 책의 내용과 성격에 관해서 몇 마디 설명드리는 것이 저자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수록된 글은 몇 개를 제외하면 모두, 또 하나의 반(反)문명적 군부독재체제가 사라져간 1987년에서 ’89년 말 사이에 발표된 것들이다. 이 시기는 여러 해 만에 다시 나에게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지적·사상적 활동의 기회가 주어진 때다.

글의 내용과 성격은, 여태까지의 나의 글과 책들이 그러하듯이, 넓은 의미에서 우리 민족사회에 제기되는 정치·사회·문화·사상적 현실문제들을 다룬 것이다. 그 밖에 문명비평적 관점에서 인간의 삶의 질에 관해서 고민한 글들이 포함된다.

취급된 주제와 글의 형식은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한반도 평화토대의 구축을 위한 모색」*처럼 원고지 200매 가까운 논문을 비롯해, 군사·정치·외교·국제 문제 등에 관한 딱딱한 것들과 10매에 미달하는 짧은 평론에 이르기까지 일정치 않다. 그런 까닭으로 인해 『自由人, 자유인』은 나의 기왕의 저서들 중에서 시대순으로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0년대의 국제정세와 한반도』 『분단을 넘어서』 『역설의 변증』을 잇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와 같은 설명을 머리말의 앞 부분에 적는 이유는 이 책에 대한 독자의 판단을 도우려는 저자의 노파심에서다. 위에 적은 책들과 그밖에 『중국혁명』 『베트남전쟁』 등 나의 책들은 지난 한 시기, 광신적 극우·반공주의자들에 의한 어용용어로 이른바 ‘의식화의 교과서’라는 도장이 찍혔다. 반(反)지성의 극치다. 하지만 그 같은 거짓(허위)의 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나의 글에 대해서 퍼붓는 비방을,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독자들의 열렬한 성원이 감싸주었다. 거짓으로 지배하려는 힘있는 자들의 증오가 나의 책들에 던져질수록 그에 의한 상처를 치유하고도 남을 뜨거운 사랑이 독자들에게서 보내져왔다. ‘의식화의 교과서’라는 권력집단의 낙인은 그래서 매도와 영광이 표리를 이루는 표현이 되었다.

그러기에 바로 지금, 『自由人, 자유인』 한 권을 어쩌다가 서점의 책꽂이 앞에서 펴들게 된 이는, 나의 기왕의 다른 책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그 어느 쪽의 가치평가에 편들 것인지 망설이리라고 생각한다. 망설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판단의 기준은 간단하기 때문이다. 화해와 평화와 사랑의 시대정신이 도도히 밀려드는 오늘에도 힘과 전쟁과 미움의 철학에서만 마음의 평온을 누릴 수 있는 이는 더 지체할 필요가 없다. 서슴없이 책을 덮고, 옆에 있는 미국판 전쟁만화나 범죄소설 진열장 앞으로 발을 옮기기를 권한다. 한편,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왕의 나의 저서들에서 작은 의미라도 찾는 분이라면 이 머리말과 차례만을 훑어보고 돌아서도 무방하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과분한 기쁨이다.

이 글들이 발표된 시기는, 필자가 광주시민항쟁 이후 4년간에 걸친 두 번째의 ‘해직교수’ 상태에서 복직되어 대학의 강단에 다시 서게 된 뒤부터다. 반민주적 군부정권하에서 다시 공인(公人) 자격을 회복한 후 처음으로 발표된 「지식인의 기회주의」로 이 책은 시작된다. 사유는 이러하다.

나는 유신독재정권이 신문·방송·잡지 등 공공 보도기관에서 시달한 집필불허(執筆不許) 인물의 한 사람으로서 광주학살 정권의 몰락까지 10여 년 동안 어떤 신문에건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희대의 범죄집단을 ‘단군 이래의 영명한 지도자’라고 아첨하는 신문·방송과 그것을 통해서 글과 말로 날뛰는 이 땅의 소위 ‘지식인’의 작태를 보면서 다만 분노할 뿐이었다.

1987년 6월, ‘지식인’들이 금성철옹이라 믿었던 또 하나의 억압의 체제가 민주주의와 인간화를 요구하는 민중의 힘에 의해서 무너졌다. 감격의 순간이었다. 1987년 6월 29일!

‘거짓의 체제’가 무너지는 것보다 더 재빨리, ‘거짓의 사상’의 나팔수였던 소위 언론기관·언론인·지식인이 새로운 분장으로 무대에 뛰어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민주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였고, ‘군부독재체제에 대항한 투사’였다. ‘참’의 사상과 사람은 오히려 뒷전에 밀려나고 마는 사회상이 연출되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양화(良貨)는 악화(惡貨)를 구축한다’. 새로운 거짓에 대해 변함없는 참은 또 싸워야 할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런 거짓과 참의 갈림길에서, 오랜 세월 거짓의 앞장을 섰던 어떤 신문이 나에게 논단 지면을 제공해왔다. 정말 여러 해 만에 제공된 공개적 의사표시의 기회였다. 나는 서슴없이 그 제의를 받아들여 소위 ‘언론인’과 ‘지식인’의 죄과를 묻는 원고 14매의 짧은 글을 「지식인의 기회주의」라는 제목을 달아서 넘겼다. 활자화된 그 글은 소위 언론계와 지식인 사회에 하나의 돌을 던진 셈이 되었다. 파문은 번져서 한참 동안 자기비판과 ‘과거청산’의 목소리가 왁자지껄했다. 원고지 14매의 작은 글이 그 같은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이런 과정으로 해서 「지식인의 기회주의」가 이 책의 문을 여는 글이 되었다.

직업적으로건 능력의 탓이건, 글을 쓰고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누린다는 것은 굉장한 특권 또는 특혜가 아닐 수 없다. 그 특권은 사회에 대한, 또는 역사에 대한 의무와 책임의 수행이 함께 할 때에만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 책을 구성하는 크고 작은 61편의 글은 허위의 장막을 벗겨서 진실을 드러내려는 역사적 책임감의 결실이다. 철학적으로 현실적으로, 거짓은 인간(성)의 억압이면서 부정이다. 부정된 인간(성)은 노예다. 자유는 인간존재의 전부며 그 본질이다. 본질을 부정당했거나 박탈당한 상태는 자유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가 아니다. 자유인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사회는 건국 이래 수십 년간 그 권력·체제·지배집단·이데올로기……의 허위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거짓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개인의 양심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부정당했을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바라보는 문명세계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자유, 그리고 자유로운 판단마저 박탈당했다. 이 상태는 지금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은 우리 국가·사회의 안과 밖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경험하는 일들을 그 참(진실)된 모습으로 보고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꾸며졌다. 이름하여 『自由人, 자유인』이라고 한 까닭이다.

뜻은 그러했지만, 외침의 소리가 모두 조리에 합당한 것이었는지는 나 자신도 장담할 수 없다. 내용을 구성하는 지식과 자료와 논리가 객관적 검증을 완벽하게 견딜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에 대한 심판의 권리는 독자에게 있다. 필자는 다만 가혹한 법률적 한계의 극한까지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부딪쳤다는 사실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사회의 현실로 말미암아 ‘법률의 한계’에서 머물 수만은 없었다. 수록된 글이 1989년 가을로 끝난 까닭은 바로 그 외침이 ‘법의 한계’를 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민주적 문명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전근대적 악법인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1989년 4월에 체포되어 6개월간의 구속 끝에 집행유예로 석방된 그해 말로써 이 책은 끝난다. 『한겨레신문』 기자단 북한 취재방문 구상을 도왔다는 이유로 투옥됐던 그 기간은 공백으로 남는다.

나는 이제 가벼운 피로를 느낀다. 펜을 무기 삼아 싸우는 전선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것도 여러 번이고 흉포한 권력의 포로가 된 것도 너덧 차례나 된다. 국가와 현실 상황은 아직도 가열한 전투를 예고하지만 개인에 따라서 잠시 쉬면서 상처를 아물게 하고 기운을 회복할 필요 또한 절실할 수가 있다. 저반의 개인적 상황과 심정적 상태를 그린 「30년 집필생활의 회상―잠시 펜을 놓고 쉬는 마음」이 이 책의 끝을 이루는 것이 그 때문이다.

각기의 글이 쓰여졌을 때와 상황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내용과 문장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재현했다.

재미없는 책을 읽으려 하는 친애하는 독자에게 미리 감사드린다.



1990년 7월

리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