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베스트 : 일본열도 7000km 자...
  HOME > 도서안내 > 총 도서목록
반세기의 신화 (리영희저작집)
리영희 지음
2006-08-30 | 한길사 刊
신국판 | 양장 | 456 쪽 | 22,000 원
89-356-5698-4 | 04300
 
이 책의 내용과 성격, 그 글들을 쓴 저자의 의도와 목적,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될 독자에게 기대하는 저자의 희망을 아울러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민족분단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남북문제에 관해서 우리들이 ‘...
 
 
이 책의 내용과 성격, 그 글들을 쓴 저자의 의도와 목적,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될 독자에게 기대하는 저자의 희망을 아울러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민족분단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남북문제에 관해서 우리들이 ‘진실’일 것으로 믿어왔던 온갖 ‘거짓’들의 정체를 밝혀보자는 것이다.

지금 이 책을 손에 들고 이 머리말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나 나나, 그리고 모든 남한의 시민들은 자신이 받은 공식교육 수준의 고하와는 관계없이, 분단된 민족의 남과 북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문제들에 대해서 한결같이 ‘신화’를 믿어왔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개인들과 집단은 그 오랜 세월 동안 ‘국가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반공주의’의 위장 아래 거짓을 진실로 교육하고 선전하고 ‘법’으로 강요해왔다. 심지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여 선량한 시민들의 가치관과 신념체계를 마비시켜온 반세기였다.

시대가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지구상의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진실을 가장한 허위의 껍질들이 벗겨지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하늘 위에서 실재의 허울을 쓰고 있던 신화들이 땅 위로 끌어내려지고 있음을 본다. 이데올로기적 지배와 제국주의 또는 패권주의가 그 추악한 알몸을 위장했던 절묘한 ‘우상’들도 그 가면의 신통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거짓과 우상과 신화가 난무했던 20세기는 가고, 바로 21세기의 문이 열리려는 순간에 있다.

세계의 인민은 모든 나라에서, 그리고 각기의 실정에 맞추어서, 초강대국의 국가 이기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반세기 동안 그들에게 강요했던 신화에서 깨어나고 우상의 알맹이를 똑바로 들여다보고 있는데, 유독 한반도의 인민만이 강요당한 민족분단이 가져온 신화와 우상의 거짓을 아직도 신봉하고 있다. 남한의 우리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 거짓을 강요했던 광적인 극우·반공주의·외세의존적 폭력체제가 국민의 힘으로 거부된 뒤에 마땅히 거짓과 진실을 가릴 줄 아는 ‘인식의 혁명’이 일어나야 했다. 일어날 것으로 믿었다. 적어도 ‘문민’의 시대라면, 지난날 민족분단을 정당화하고 합법화하고, 외세의 이익에 봉사하고, 민족 간 대립을 영속화하면서, 그것을 마치 독립이나 평화로 착각해온 온갖 허위의식도 함께 물리쳐야 한다.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반세기 이상 동안, 바로 그 같은 허위의식의 제도화로 자신들의 정치·경제·사회적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 재생산해온 수구세력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 낡은 신화와 퇴색한 우상의 권위를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다. 시민은 시민대로, 중국 현대의 사상가 노신(魯迅)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구적 기득권 세력이 몰아넣은 밀폐된 철의 방 속에서, 진실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상태로 질식해 의식을 잃고 죽음의 길로, 의식이 마비됐기 때문에 죽음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죽음의 길로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적어도 의식적으로 사상적으로는 그러했다.

그러지 않고야 어떻게, 이 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예수의 신자이며 부처의 신도인데, 굶고 있는 북쪽의 동포에게 구원의 손을 뻗치자는 말만 나오면 아직도 ‘빨갱이’니 ‘용공’이니 ‘철부지’니 하는 음흉한 매도의 소리가 그치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그 매도의 소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분단된 민족의 남쪽 사회는 ‘선’(善)이고 북쪽 사회는 ‘악’(惡)이라는, 분별없는 ‘선악설’의 이분법적 사고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정말 남쪽 사회는 선이고 북쪽 사회는 악일까? 사회적 선과 악의 정의는 무엇일까? 도덕과 윤리가 파탄 난 남한에서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일상적 모습들은 과연 ‘선’의 개념이나 정의에 합당한 것일까? 소름이 끼치는 사회는 아닌가? 우리는 분단민족 간의 제반 현상·문제·관계를 판단하는 데 자신에 대한 준엄한 반성과 비판 없이, 잘못되고 안이한 이분법적 ‘선악설’의 오류에 빠져 있지는 않을까?

그와 같은 선악설적 인식이나 신념의 오류는 마찬가지로 북한 사회와 동포들에게도 적용된다. 북한의 정치체제·사회통제·문화적 생활방식 속에서 집권세력이 제도화한 허위의식에 마비된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사회와 인간생활을 ‘악’으로 규정한다면, 이 또한 불행한 역방향적 선악설의 이분법적 논리다. 공개적 정보가 허용되지 않고 ‘국가’가 ‘공여’하는 정책적 정보만을 근거로 한 북한 주민들의 남한관 역시 시정되어야 한다.

나는 남과 북의 현실은 남과 북에서 그같이 신화화한 이분법적 선악설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견해를 오랫동안 견지해왔다. 남들이 민족의 절반인 북한의 연구를 경원하면서 실리의 보수가 확실한 연구분야에만 관심을 가지던 1960년대부터, 나는 미력하나마 체제적 허위의식에 중독되지 않은 가슴과 머리로 분단된 다른 반쪽 사회의 진실을 알고자 노력해왔다. 적어도 세계적 냉전체제가 허물어지고 국내에서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의 위협이 다소 멀어지기 시작하는 정책 변화의 징후가 나타나기가 무섭게, 앞을 다투어 ‘북한 연구가’를 자처하고 나선 시대편승적인 지식인들과는 스스로 그 입지와 관점을 달리한다.

그 같은 자세로 일관한 40년간에 걸친 관찰과 연구의 결과, 북한에는 북한만큼의 ‘악’이 있고 북한만큼의 ‘선’이 있다는 변함없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남한에는 남한만큼의 ‘선’이 있는 반면, 남한만큼의 ‘악’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지적하는 데 서슴지 않아왔다.

북한 사회가 지니는 선과 악의 성격과 그 질과 양을 남한 사회가 지니는 그것과 등가로 비교해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공리나 방정식은 없다. 다만 한마디로 결론지어서 말한다면, 남한이 북한에서 규정하는 만큼의 극악한 ‘악’의 실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 사회도 남한에서 그럴 것으로 믿고 있는 것과 같이 극악한 ‘악’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나름의 이런 관찰을 기술한 것이 ‘남·북한 선악설을 넘어서’이다.

반세기 이상이나 오랜 세월 동안 한국 시민을 지배해온 허위의식의 신화와 우상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나는 그때마다 중요한 이슈(문제)를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논문이나 평론을 발표해왔다. 이 책에서는 특히, 바로 1999년 6월에 서해상에서 남·북한 해군의 무력충돌이 발생한 원인인 소위 ‘북방한계선’의 합법성 여부를 다룬 논문을 수록했다. 이 논문은 사건 발생 직후, 나로서는 정말로 힘겹게 문헌을 수집하고 해석하고 이론화한 것이다. 이 논문이 발표된 『통일시론』이 탄생한 지 일천하고 독자층이 제한된 계간지여서 사회적 공론화가 되지 못한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남·북 간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애국심이나 광적인 반공·반북한주의의 발동에 앞서서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학자적 신념으로 일관하고 있다. “진실을 알고 주장을 하자!”는 것이다. 바로 그 정신을 자극한 또 하나의 위기적 사태가 발생했다. 북한의 미사일(인공위성) 개발·발사(1998년 8월)…… 문제를 놓고 지난 1년 내내 미국의 대응이 이라크형 전쟁 위협의 수준까지 치달았다. 북한의 핵개발을 놓고 벌어진, 1994년 여름의 미국의 전쟁 위협에 이은 두 번째 군사위기다. 소위 ‘북·미 핵·미사일’ 대립에는 한국 국민이 모르고 있는 사실과 일면만을 과신하고 있는 요소들이 많다.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면 미국의 핵·미사일 전략은 물론, 국가적 성격에까지 천착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세계적 군사정책과 이념 및 전략에 대한 비판적 연구는 반세기 이상 금기로 되어왔다. 미국과 한반도(남이건 북이건, 또는 남·북을 합쳐서) 문제의 본질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가 이기주의를 도외시하고는 그 이해의 첫발도 옮길 수 없다. 「북한­미국 핵과 미사일 위기의 군사정치학」(2부)이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미국에 대한 오랜 우상과 신화를 벗겨주는 데 도움이 되면 다행이겠다.

2부에는 나의 이전의 책에 수록된 두 편의 논문을 재수록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가 아니다」*와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 연구」**다. 이들 글을 여기에 재수록한 까닭은, 2부가 종합적으로 구상하는 한반도(또는 미국­북한) 정세의 입체적 이해를 위해서 불가결의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독자의 양해를 바란다. 서술이 상당히 딱딱하고, 본격적인 논문의 형식 때문에 주의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겠지만, 독자의 인식의 폭을 넓히고 깊게 하는 데 일조가 되리라고 자부한다.

앞에서 나는 남·북한의 동포가 서로 상대방을 규정하는 이분법적 편견과 ‘선악설’적 독단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반세기 이상이나 강요된 결과로 한심하리 만큼 왜곡된 우리의 의식을 바로잡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의 여러 기간의 저서들에서도 이 ‘왜곡된 의식의 교정’이 언제나 중심적 테마였듯이, 이 책에서도 역시 그것이 중심적 담론이다. 남·북한의 어느 쪽도 절대악도 절대선도 아니라면, 민족적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각기 자기 사회의 ‘악’의 요소를 냉엄하게 인식하고,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마다하지 않고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그 작업은 거의 혁명적 개혁을 요구할 것이다. 바람직한 통일을 위해서는 그보다 쉬운 방법은 없다. 남·북은 ‘함께’ 변해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남북관계의 개선과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지만 남한은 변할 것이 없다는 잘못된 생각이 일반화돼 있다. ‘선·악’론적 사고다. 남한도 북한만큼 변해야 할 까닭을 밝히고 서술한 것이 3부에 실린 「통일의 도덕성」이다. 한국에서 매일같이 열리고 있는 남북관계·통일문제에 관한 연구발표나 국제회의 등에서 관심 밖에 있고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 낯선 주제이고 시각이다. 이 글 역시 독자들의 의식화와 함께 진지한 비판을 받고 싶다. 한국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남한의 현실을 철저하게 개혁함이 없이, 현재의 한국을 그대로 북한에 들씌우는 방식의 민족통합이 과연, 북한 주민은 물론 통일민족 전체의 행복일 수 있겠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와 반성을 위해서다.

올바른 청소년 교육을 염원하다 교직에서 추방됐던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여러 해 만에 복직한 교단에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한 어린 학생들의 구태의연한 반북한적·반통일적 질문을 받고 당황해한다는 고충을 들었다. 역시 ‘의식의 문제’라고 생각되었기에, 그 전교조 교사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뜻에서 강연한 것이 「학생들에게 남북문제와 통일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다.

남·북으로 갈라져 살아온 동포 사회가 다시 하나 될 시간을 점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언젠가는 남한이 상대적 우월성을 가지고 북한을 통합하리라는 추세는 불가역적 대세로 믿어진다. 그럴수록 나는 통일한국의 전체 주민이 그 밑에서 살아야 할, 단일 경제 제도가 될 남한의 자본주의의 반인간성과 범죄성에 생각이 미치면 벌써부터 마음이 우울해진다. 통일과 관련해서의 자본주의 제도 문제를 포함해 21세기의 세계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돼야 한다는, 나의 평소의 소견을 피력한 것이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라는 인터뷰 글이다.

자본주의(주로 미국)는 과거 냉전시대에 사회주의 사상과 국가와 제도를 ‘악’(evil)으로 단정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가 되라며 매도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를 이겼다고 자부하는 오늘의 자본주의는 과연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통일국가의 지배적 경제원리와 제도가 될 한국(남한)식 자본주의의 ‘얼굴’을 똑바로 검증해야 할 필요성은 통일의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그만큼 더 심각하고 시급한 문제가 된다. 나의 견해로는, 휴전선 이남의 자본주의적 생활양식과 그 이북의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에는 각기의 장점과 결점이 공존한다. 그러기에 서로가 자기의 제도를 미화하고 상대방의 그것을 매도해온 것과는 달리, 휴전선 남과 북에는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다. 이 관점이 이 책을 관철하는 근본사상이다.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종합한 나의 결론은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에 귀결된다. 바로 이 책의 부제로 정해진 까닭이다. 읽는 이의 비판을 바라 마지않는다.

끝으로, 이 책의 발행을 구상하고, 동지적·직업적 정성을 다해 편집에서 출판까지 노고를 아끼지 않은 도서출판 삼인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



미국과 북한이 미사일 문제에 대한

잠정적 합의를 보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으면서



1999년 9월 15일

산본의 수리산 기슭에서 적다.

리영희